“선생님, 정말 대단하세요!!! 힘들지 않으세요? 이렇게 오랫동안 한결같이 봉사활동과 기부를 해오시구요...” 최근 들어 내가 참 많이 듣는 말이다. 누군가는 나를 엄청난 부자라고 생각하거나 다른 누구보다도 좋은 사람이라고 오해(?)하기도 한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활동을 하고 후원금을 모아 기부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난 그리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나 역시 한때는 좀 더 좋은 아파트에 살기 위해, 더 좋은 것을 가지기 위해 앞만 보고 달리며 돈을 벌기 위해 애쓰던 시절이 있었다. 그랬던 나에게 스스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된 일화가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20년 전인 1998년의 일이다. 그 해 겨울 두 딸과 함께 캐나다 친구 집을 방문하였다. 스키 여행을 위해 이동 중이었는데 갑작스런 폭설로 차가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핸드폰도 없고 주변에 집도 없어서 어떤 조치도 취하지 못하여 발만 동동 구르며 당황하고 있었다. 그 때 우연히 만난 나이가 많아 보이는 한 농부가 트랙터로 우리 차가 빠져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덕분에 우리는 스키를 잘 즐기고 올 수 있었다.

당시에 너무도 감사하여 어떻게 보답을 할까 고민하다가 약간의 사례금을 드리려 했는데, 그저 당신이 할 일을 했다면서 혹시 다음 기회에 누군가를 도울 기회가 되면 기쁘게 도와주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 한 마디가 내게는 그야말로 커다란 충격이었고, 내 자신을 다시금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 이후로 예전 같으면 그냥 지나칠 일들이 내 눈에 들어왔고, 혹시 내가 도울 수 있는 일들이 있는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것이 내가 봉사활동이란 것을 하게 된 계기라고 생각하고 있다.

처음엔 청소년들을 상담하는 일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결혼 전 교사생활을 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아이들을 만나는 일이 어렵지는 않았다. 강남구자원봉사센터에서 자원봉사교육팀을 이끌어가며 여러 학교에 나가 이이들에게 자원봉사의 중요성을 교육했고, 서울가정법원 위탁보호위원을 하면서 많은 학교 밖 청소년들도 만나게 되었다. 그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서로 공감하는 동안 상담 자원봉사의 어려움과 보람을 함께 느꼈던 시기이기도 하다.

학교를 방문하는 일이 많아지다 보니 내가 사는 동네에도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는 돈이 없어 점심을 굶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상담 봉사활동과 함께 나눔(기부)이란 것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주위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작은 정성들을 조금씩 모아 학교와 연계하여 어려운 아이들을 후원하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생각난 것이 내가 살고 있는 미도아파트의 주민들이어서 아파트 이웃들에게 함께 하자고 제안했고, 몇몇 주민들을 시작으로 동참하는 인원이 점차 늘어났다. 모두들 너무나도 고맙게 정성을 보태주었다. 처음에 미도아파트를 중심으로 시작하였기에 ‘미도장학회’라고 붙였고, 나중에 좀 더 부드럽게 ‘미도엔젤스’란 이름으로 바꾸었다. 해를 거듭할수록 후원자들이 많아졌고 제법 많은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10년 정도를 열심히 그리고 기쁘게 달려왔다. 그러던 중, 2008년 ‘서울시 시민상’을 청소년지도자 부문으로 수상하게 되었다. 그 인센티브로 2008 베이징올림픽 개막식 참가의 기회까지 얻게 되었다. 비록 개인적인 일정과 맞지 않아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그때의 수상이 나에게 많은 감사와 감동을 느끼게 해 주었고, 뭔가 더 열심히 그리고 좀 더 기쁜 마음으로 해야겠다는 동기가 되었던 것 같다. 수상과 더불어 많은 사람들에게 축하와 감사의 인사를 받았고 자원봉사의 활력을 얻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장학사업의 규모를 더 키워 많은 사람들에게 자원봉사와 기부문화를 알리고 좋은 활동에 함께 동참하도록 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장학 사업은 물론, 지역 사회복지 차원의 봉사활동을 겸하는 지역 자치조직인 지금의 ‘대치자원봉사회’를 만들었다.

생각보다 사업이 많아지고 규모가 커지면서 ‘내가 잘 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앞서기도 했지만, 대치2동 주민센터와 강남구청 관계자분들의 많은 도움 덕분에 용기를 내어 추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 때 ‘앞으로 딱 10년만 열심히 해보자’라고 나와의 약속을 했다. 그래서 중간 중간 어려운 일들이 생겨 지치고 힘들 때마다 나와 했던 약속을 생각하고 마음을 다잡아가며 이끌어 왔던 것 같다.

지금 되돌아보니 고비 때마다 나를 일깨워주고 용기를 북돋아 주신 분들이 많았다. 2008년 대치자원봉사회 발족에 큰 용기를 주신 당시의 강석린 동장님, 위탁보호위원으로서의 사명감을 심어주시고 항상 봉사활동에 솔선해주신 서울가정법원 박종택 부장판사님(현 군산지원장), 장애우들을 보살피느라 늘 바쁜 상황 속에서도 청소년들에게 참된 봉사활동의 기회를 제공해주시고, 대치자원봉사회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주신 한울장애인공동체 안성준 원장님 등 많은 분들이 생각난다.

특히 2010년 알게 된 故이태석 신부님의 사랑과 헌신은 나의 자원봉사에 마르지 않는 샘물이 되었다. 많은 지인들에게 수단어린이장학회 후원자가 되어 달라고 서슴없이 말할 수 있었던 용기도 신부님의 숭고한 사랑의 실천에 큰 감동을 받았기 때문임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한 분야에서 수년간 지속적으로 자원봉사를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분들이 계셨기에 나의 자원봉사가 계속될 수 있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그렇게 또 10년이 흘렀다. 그 동안 대치자원봉사회는 강남구 지역의 청소년들을 지원하는 장학 사업, 기부를 통한 사회복지기관들에 대한 후원 사업 및 다양한 봉사활동을 진행해 왔다. 매년 70여 명의 청소년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했고, 청소년 봉사단체인 ‘강남위더스 청소년봉사단’ 활동도 60회나 진행했다. 위더스 활동은 근로봉사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기부문화를 확산시키는 데 제1목표를 두고 추진해 왔다. 어려움도 많았지만 참여자들의 깊은 이해와 협조 속에 60회를 이룰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올해를 마무리하는 지금, 약속했던 10년의 활동을 조금 정리해 보려고 한다. 대치자원봉사회를 믿고 후원해 주시는 많은 분들의 뜻이 지역 사회에 활짝 꽃필 수 있도록 청소년 장학 사업은 계속 추진할 것이다. 그리고 사회복지 기관들에 대한 후원과 가정법원 위탁보호위원으로서의 청소년 상담활동을 유지하는 정도로 전체 활동 규모를 조정하고자 한다.

그동안 도움을 주셨던 수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10년 동안 스스로에게 한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한 나 자신에게도 잘했다 칭찬하고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