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기술이 금융과 결합하면서 과거에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들이 속속 이루어지고 있다. 핀테크란 용어는 모를 수 있지만 우리는 이미 혁신과 변화의 핀테크 시대를 살고 있다. 카카오페이, 삼성페이, 애플페이 등 다양한 간편 결제수단이 쏟아져 나오고, 은행송금과 대출, 자투리 돈 운영마저 스마트폰으로 처리되고 있다. 인터넷전문은행이 생기고 크라우드펀딩, P2P대출이 새롭게 나타났다. 이런 기류는 화폐에도 영향을 미쳐 비트코인이라는 전대미문의 디지털통화 발명품이 등장했다.

우리가 비트코인이라고 부르지만, 손에 쥘 수 있는 물건은 아니고 컴퓨터상 기록 즉 코드값으로만 존재한다. 결제에 쓰기위해 이 비트코인을 보유하려면 성능 좋은 컴퓨터를 이용해 어려운 암호문제를 풀고 그 대가로 비트코인을 얻는 것, 흔히 채굴(mining)이라 부르는 방식 외에, 세계 각국에 있는 비트코인 거래소를 이용하여 구매하는 방식이 있다. 회원가입 등 절차를 거쳐 비트코인 거래를 위한 전용지갑을 발급받고 대금을 납부하면 간편하게 살 수 있다.

12월 8일 현재 비트코인 거래소 빗섬에서 1비트코인의 가격은 90만 7000원. 주식과 달리 비트코인은 1억분의 1 단위까지 나누어 사용 가능하다. 영희가 5비트코인을 사서 자기 전용지갑에 넣은 후 이 비트코인을 철수에게 보내는 거래를 생각해 보자. 영희가 철수에게 500만원을 인터넷상으로 보내려면 은행이나 신용카드 회사 또는 페이팔 같은 서비스에 의존해야 한다. 이들 중개자는 계좌소유자의 잔고와 거래내역이 기입된 온라인상의 장부를 유지ㆍ관리하는 역할을 한다. 즉, 영희가 철수에게 500만원을 보내면, 중개자는 영희의 계좌 장부에서 500만원을 빼고, 철수의 장부에 500만원을 더하는 식으로 거래를 처리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디지털통화는 디지털문서와 마찬가지로 단지 컴퓨터상의 파일이기 때문에 중개자, 즉 공인된 장부관리자가 없다면 쉽게 복제하여 이중으로 사용될 수 있다. 이같은 문제는 컴퓨터과학에서 이중지불 문제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5비트코인을 보내는 거래에서는 어떻게 이중지불 문제를 해결할까? 비트코인이 택한 전략은 분산과 공개였다. P2P 네트워크를 통해 시스템의 모든 이용자들에게 장부를 공개하고 분산했다. 그리하여 비트코인 시스템상에서 발생하는 모든 거래는 하나의 공개장부에 기록되고, 분산되어 저장되는데 이 단일장부를 블록체인(blockchain)이라 한다.

새로운 거래가 발생하면 잔액이 충분한지, 이중지불이 아닌지, 거래에 사용된 비트코인이 예전에 사용된 적이 있었는지 등이 검증된다. 수만 명의 자발적 검증인(채굴자) 및 이용자들로 구성된 전 지구적 규모의 P2P 네트워크가 스스로 디지털서명 해쉬값 등 암호문제를 푸는 방식으로 유효성을 검증해 블록체인 즉 공개장부를 관리하는 금융기관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거래 정보를 기록한 장부인 블록체인은 중앙서버에 저장되지 않고 참여자 각각의 컴퓨터에 분산 보관된다. 새로운 거래가 생기면 이를 반영해 장부를 갱신하는 작업도 공동으로 수행한다. 그 기록이 쌓이면 거래기록을 포함하는 작은 데이터덩어리 곧 블록(block)이 되고 네트워크가 검증해서 확정하면서 최근의 블록을 과거의 블록에 이어간다.

만약 비트코인으로 사기를 칠려고 누군가 자신에게 돈을 줬다고 거짓말을 해도 상호확인 과정에서 모순이 생기기 때문에 발각된다. 중앙집중형 시스템에선 견고한 보안체계를 만드는 데 비용과 노력을 쏟아야 하지만 블록체인에선 이러한 투자 없이 조작이나 해킹을 막을 수 있다.

2009년부터 7년 간 비트코인이 해킹이나 도난 같은 문제없이 거래되면서 블록체인의 안정성은 확인됐다. 디지털통화의 확산에 비관적인 전문가들조차 블록체인 기술의 혁신성과 활용 가능성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정보기술 보안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금융업계가 블록체인 기술에 특히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비트코인은 독립적으로 세계적인 단일 화폐시스템으로 진화했다. 비트코인 네트워크 위에서는 전 세계 어디서나 비트코인(BTC)을 화폐 단위로 거래가 이뤄지고 금액이 표기된다. 비트코인 거래는 외국으로 돈을 보내는 송금거래 등에서 상대적으로 수수료가 낮고 걸리는 시간이 적어 상당한 강점을 갖고 있다. 이 화폐의 가치는 총공급량이 일정 수준 이내로 제한된 가운데 이들 총량에 대한 개인들의 수요와 공급에 의해 공개시장에서 결정된다. 중앙은행이 임의대로 발행량을 조절할 수 있는 기존 화폐와 다른 점이다.

다양한 디지털통화가 출현하고 거래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자금세탁, 탈세, 마약ㆍ무기밀매 등 불법거래에 악용하거나, 규제 사각지대에 있는 점을 노려 유사수신 등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발생하여 미국 일본 등 각국에서는 디지털통화를 악용ㆍ빙자한 각종 불법행위를 차단하는 한편, 디지털통화의 건전하고 투명한 거래를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할 필요성이 제기되어 논의가 진행중이다.

우리나라도 디지털통화 거래가 꾸준히 확대되고 있어 제도화가 필요한 시점에 이른 것으로 판단된다. 최근 금융위원회는 한국은행 등 유관기관, 관련 업계 인사들과 함께 디지털통화의 법적 정의, 거래소 등록제, 자금세탁방지, 외환규제 등에 대하여 논의할 계획임을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