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지난 9월 13일 최초의 플라스틱 화폐로 5파운드(원화환산 기준 약 7천100원) 화폐를 시중에 공급하기 시작했다. 영란은행은 모두 4억4천만장을 제조하고 이를 신속하게 공급하여 시중에서 원활하게 유통되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은 지난 2010년부터 수년간 화폐의 재질 변경을 검토하고 여론 수렴 등을 거쳐 폴리머(Polymer, 폴리프로필렌계 중합체)를 소재로 한 새로운 화폐 발행을 결정했다.

새 5파운드 플라스틱 화폐의 앞면은 기존 지폐와 동일하게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얼굴이 인쇄됐고 뒷면은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의 모습을 새로 담았다. 또한 초상화와 함께 처칠의 연설 문구인, “나는 피와 수고, 눈물 그리고 땀 밖에 드릴 게 없습니다”도 실었다. 아울러 빅벤 시계탑과 의사당 건물도 담고 있는데 시계탑이 가리키는 오후 3시는 1940년 5월 13일 처칠이 총리로 취임한 뒤 의회에서 처음 연설을 했던 시각을 나타낸다.

세계적으로 플라스틱 화폐를 가장 먼저 도입한 곳은 호주이다. 호주중앙은행(RBA)과 호주연방과학원(CSIRO)이 공동 개발해 1988년 플라스틱 화폐를 처음 발행하였고 1996년에는 전 권종을 플라스틱 소재로 바꿨다. 뉴질랜드도 2000년부터 모든 권종을 플라스틱 지폐로 사용하고 있다.

이후 캐나다, 베트남, 브루나이, 파푸아뉴우기니 등이 전 권종, 멕시코(50·20페소), 홍콩(10달러), 모리셔스(500·50·25루피), 바누아투(2000·1000·200바투) 등이 일부 권종에서 플라스틱을 사용하고 있다. 영국은 올해에 5파운드 플라스틱 화폐를 발행한 데 이어 내년에 10파운드 화폐 등 나머지 권종도 차례로 폴리머 소재로 전환할 계획이다.

기술의 발전은 화폐를 제조하는 데도 큰 변화를 가져왔는데 그중의 하나가 화폐의 소재이다. 그동안 대부분의 나라는 면 소재를 이용해 지폐를 만들어 왔다. 잉크가 잘 스며들어 인쇄하기가 용이한 데다 손에 닿는 촉감이 부드러워 화폐의 소재로 제격이라는 평이다. 하지만 이제 여러 나라에서 플라스틱 소재인 폴리머(Polymer)로 화폐를 제작하고 있다. 내구성이 강하고 위ㆍ변조가 어려운 지폐를 만들려는 중앙은행의 노력의 결과이다.

필름과 비슷하게 보이는 폴리머는 일반 면 소재와 비교하면 좀 더 광택이 있고 빳빳하다는 느낌은 들지만 지폐로서의 일반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는 소재라 할 수 있다.

플라스틱 화폐의 장점은 뛰어난 내구성과 위ㆍ변조 방지 기능이다. 더러워져도 씻어 쓸 수 있고 박테리아나 세균이 서식하기 어려워 깨끗하다. 또한 접어서 지갑에 넣거나 주머니에서 구겨져도 지폐보다 더 오래 쓸 수 있고 세탁기에 넣고 돌려도 끄덕없다. 따라서 지폐 한 장의 평균 수명이 기존 면 소재 지폐보다 2배 이상 길다.

더욱 뛰어난 점은 위ㆍ변조가 어렵다는 것이다. 폴리머 소재를 일반인이 구하기 어려운 데다 컬러복사와 같은 방식으로 위조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홀로그램이나 다른 보안기술을 적용하기가 더 쉽고, 투명창처럼 플라스틱에서만 쉽게 적용될 수 있는 위조 방지 기술도 개발되고 있다.

물론 단점도 있다. 접어서 간수하기가 조금 더 어려울 수 있고, 열에 약해 실수로 다리미로 다렸다간 영영 못쓰게 될 수도 있다. 또한 은행 창구에서 풀린지 얼마되지 않은 신권은 끈적거림이 있을 수 있어 두 장이 붙어 있는 줄 모른 채 잘못 사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면 소재 지폐보다 제조단가가 2배 가량 높기는 하지만 그 대신 수명도 길기 때문에 전체 화폐제조비 측면에서는 절감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처럼 폴리머 소재로 만든 플라스틱 지폐는 장단점이 혼재하고 있는데 최초 개발국인 호주를 중심으로 사용국가가 확대되는 중이다. 이번에 주요 통화국의 하나라 할 수 있는 영국이 단계적으로 자국 지폐를 플라스틱 지폐로 바꾸기 시작함에 따라 세계적으로 지폐의 재질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고액 지폐의 퇴출, 동전 사용의 절감 등에 대한 의견들이 다수 등장하는 가운데 조폐시장에 또 하나의 바람이 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