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법화(法貨)는 한국은행법에 의거 한국은행이 발행한 한국은행권(지폐)과 주화(동전)를 말한다. 한국은행 금고내에 보유하고 있는 화폐는 화폐로서의 기능이 부여되어 있는 것이 아니어서 한국은행의 자산 또는 부채가 아니며, 특수물품으로서의 성격을 가진다. 한국은행 창구를 통해 시중에 유통(발행)되었을 때에 비로소 현금이 되어 돈으로서의 가치를 가지게 된다.

화폐의 일생에서 화폐가 한국은행 금고를 드나드는 유형은 대략 다음과 같은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금융기관은 고객의 예금인출 요구에 대비하기 위하여 일정한 금액의 지급준비금을 화폐로 가지고 있거나 한국은행 예치금으로 보유해야 한다. 금융기관이 화폐로 입금하거나 인출하고자 하면 한국은행은 이에 응한다. 이 같은 금융기관과의 거래가 한국은행 화폐수급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둘째, 금융기관을 제외한 일반고객이 액면이 다른 종류의 화폐로 바꿔달라고 요구하거나, 범칙금 등 국고세입금을 화폐로 납부하고자 하면 한국은행은 이에 응한다. 셋째, 지역별 보유화폐의 적정수준을 유지하기 위한 화폐수급점 간의 화폐이동과 한국조폐공사로부터 제조화폐(신권)를 인수하는 경우가 있다.

사람이 생로병사를 겪듯이 화폐도 우리의 삶과 같은 일생을 보내게 되는 데 일반적으로는 제조→발행→유통→환수→폐기의 순환 과정을 거치게 된다. 한국조폐공사가 한국은행과의 계약에 따라 화폐를 제조함으로써 세상에 태어나게 된다.

정해진 규격과 모양으로 제조한 화폐를 납품하면, 한국은행은 이를 받아 금고에 보관한다. 한국은행 금고에 일정기간 보관되어 있던 화폐가 여러 사유로 인해 한국은행 창구를 떠난 후, 금융기관을 통해 시중에 유통되다가 되돌아온다. 한국은행은 수납된 화폐를 분류하여 다시 쓸 수 있는 화폐를 보관하고 있다가 재발행하고, 쓸 수 없는 화폐는 엄격한 내부통제절차를 거쳐 폐기하게 된다. 폐기화폐는 분쇄 또는 용해 등의 방법으로 화폐의 형태가 완전히 없어져 화폐로서의 일생을 마감하게 된다.

화폐의 정사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한국은행으로 환수된 화폐는 출입통제 및 감시시스템이 철저하게 작동되는 화폐정사실에서 다시 쓸 수 있는 돈과 폐기대상이 되는 돈으로 분류된다. 이 과정에서 장수와 금액의 확인은 물론 위조화폐의 색출 등이 함께 이루어지며, 심하게 훼손된 은행권이나 주화는 전문직원이 직접 손으로 정리를 하게 되지만 대부분은 자동정사기에 의하여 처리된다.

한국은행 강남본부는 은행권자동정사기 등 관련시설을 보유하고 있으며, 하루에 수백만장의 화폐를 정사하고 있다. 고가의 자동정사기에는 수많은 센서와 감지기가 부착되어 있어서, 지폐를 넣고 가동하면 정사기가 화폐의 진위 여부와 장수를 정확하게 확인하고 사용권과 손상권으로 구분하는데 이때 더 이상 사용이 곤란한 손상권은 자동으로 세편 처리된다.

세단기로 매우 잘게 나누어진 부스러기는 다시 압축기계에 의하여 부피가 대략 6분의 1 정도로 줄여져 동그랗고 굵은 가래떡 모양이 된다. 이 부스러기는 자동차 방진재 등을 만드는 재활용업체에 제공된다.

한편, 녹이 슬거나 찌그러진 동전은 일일이 전문직원의 손을 거쳐 금속업체에 매각된 후 녹여져 원자재로 재활용된다. 이처럼 돈은 일생을 마감한 후에도 다른 형태로 다시 태어난다.

화폐와 관련된 모든 처리과정은 관련 직원의 견물생심(見物生心)을 방지하기 위해 정확성 확보를 최우선으로 하여 항상 상호견제와 이중확인 절차를 거쳐 수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