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법원에서 위탁보호위원일을 한지도 13년이 되어간다. 그동안 많은 청소년들을 만나 6개월에서 1년간의 상담을 하면서 그들이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해 오고 있다.

얼마 전,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7년 전 만난 한 청소년이었다. 그 아이가 검정고시에 합격했다는 소식이었다. 전화를 받는 순간, 가슴이 찡하고 눈시울이 적셔졌다. 내 딸들이 대입시험에 합격했단 소식을 들었을 때보다도 더 가슴이 벅차올랐던 것 같다.

그간의 맘 졸였던 세월들과 그 아이를 위해 기도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며 내 맘 속 여러 가지 감정들을 깨워놓았던 것 같다. 정말 너무나 기뻤다. 말할 수 없이 기뻤다. 그리고 참 신기했다. 내 딸도 아닌데, 내 조카도 아닌데 내가 왜 그렇게 기쁘고 눈물이 나는지...

이 아이는 지금으로부터 7년 전, 서울가정법원의 위탁보호위원을 하면서 만난 여자 청소년이다. 그때 나이가 14세로 중학교 2학년이었고 이미 학교는 그만 둔 상태였다. 너무나 예쁘고 얌전하고 그리고 똘똘하기까지 한 아주 사랑스러운 아이였지만 부모의 이혼 등의 이유로 비행과 일탈이 거듭되고 있었다.

상담을 하면서 이 아이의 마음을 열기엔 참 많은 시간이 걸린 것 같다. 위탁보호기간 이후에도 계속 연락을 하며 지냈다. 하루 아침에 달라지진 않았지만 조금씩 마음을 열었고, 조금씩 변화하기도 했다. 물론 내가 주는 마음만큼 변하지 않는 모습을 보며 조급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했다. 그래도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 오랜 기다림에 반가운 소식을 접하게 되다니 나는 너무나 감격스러웠다.

이런 경우는 단지 이 아이 뿐이 아니다. 부모가 안 계신 한 학생은 검정고시를 한해에 중학교와 고등학교 과정 두 가지 모두 다 합격한 아이도 있었고, 할머니가 키운 또 다른 학생은 어느덧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아 아주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이 외에도 수많은 아이들은 초기엔 자신의 힘든 상황을 별로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 아이들의 마음의 문이 열릴 수 있는 그 때까지 기다려주면 서서히 나를 믿고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며 마음의 문을 열게 되는 것 같다. 우선 나는 나의 마음을 먼저 열어 놓는다.

내가 먼저 소소한 이야기들을 꺼내놓으면 서서히 이들도 자신의 이야기를 꺼낸다. 그리고 어떠한 이야기든지 들어준다. 진심으로 이야기를 듣다보면 그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못 본 시간동안 어떤 생활을 했는지 듣고 싶어진다.

자신의 일에 관심을 받지 못했던 아이들은 이런 나의 모습을 이상하게 여기기도 한다. ‘조금 관심을 갖다가 포기하겠지’ 하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진심으로 자신을 걱정하고 염려하고 도움을 주고 싶다는 걸 알게 되면 이들도 고마워하고 나에게 보답이라도 하는 듯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멋진 소식을 들려주기도 한다.

위탁보호위원을 하면서 많은 청소년들을 만나고 있지만 사실 이들을 변화시키는 것은 정말이지 쉽지 않다. 그런데 어쩌면 그것은 당연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안 좋은 버릇 하나를 고치기도 쉽지 않은데, 어린 시절 가장 사랑받아야하는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상처받은 아이들의 삶을 단번에 고치려고 하는 것이 오히려 무리일 것이다.

이들이 10년 동안 버림받고 상처받았다면 10년 동안 보듬어주고 안아주고 사랑해주고 기다려줘야 할 것이다. 그래도 고마운 것은 그렇게 감싸주고 기다려주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부모가 그것을 해주지 못한다면 이 사회에 많은 어른들이 해주면 좋겠다. 내 자식 잘 되기를 바라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상처받은 아이들에게도 손을 내어주고 기회를 주고 응원해주는 것이 이 시대의 어른들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