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난 아주 감격스러운 초대를 받았다. 12년 전 처음 만나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한 학생, 아니 이젠 어엿한 성인이 된 한 사람으로부터 식사 초대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 아이는 처음 만났을 때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상처를 마음 한 구석에 가지고 지내는 아주 작은 소녀였다. 중간 중간 여러 가지 힘든 일들이 많다 보니 삶을 포기하려는 참 아찔한 순간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어려움을 모두 이겨내고 지금은 아주 근사한 성인으로 자신의 역할을 잘 해내며 살고 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얼마 전 자기가 할 수 있는 감사의 표현이 이것 밖에 없다면서 자신이 직접 만든 음식으로 저녁상을 손수 차려주었다. 어찌나 감격스럽고 감동이던지 눈시울이 붉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 역시 참으로 긴 시간을 기다렸고 포기할까 하는 생각도 해 보기도 하고, 아니지 하며 다시 보듬고 다독여주고 했는데 그 결과가 이렇게 감격스럽러울 수가 없다. 참으로 기쁘고 행복하다.

내가 처음으로 자원봉사활동을 한건 2000년에 시작한 청소년 상담이다. 중ㆍ고등학교나 자원봉사센터를 통해서도 많은 청소년들을 만났지만, 특히 서울가정법원 위탁보호위원을 하면서 학교 밖 청소년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다.

그렇게 만난 아이들은 대부분 강남구에 거주하는 아이들이었다. 이 아이들은 여러 가지로 아주 힘든 상황에 노출되어 있었는데 그 중 첫째가 경제적인 어려움이었다. 소위 우리나라 제일 부자 동네라고 하는 강남구에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을까 생각했지만 정말 많은 아이들이 열악하고 힘든 환경 속에서 살고 있었다. 경제적인 어려움뿐만 아니라 부모의 부재 또는 부모가 있다하더라도 제대로 역할을 하지 않음으로 인해 아이들은 학교를 그만두고 방황하고 더 나아가 비행과 범죄의 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청소년들이 죄를 범하게 되면 가정법원에서 판결을 받는다. 보호처분을 받거나 심하면 소년원으로 가기도 한다. 나는 가정법원의 위탁보호위원으로 보호처분을 받은 아이들을 만나 상담을 했다. 죄를 지은 아이들이니 보통의 아이들과 많이 다르지 않을까 생각하겠지만 모두들 하나같이 착하고 예쁜 아이들이다.

난 올 해까지 13년 동안 이 일을 하고 있다. 만날 수 있는 시간도 제각각이고 거처도 일정하지 않은 아이들을 정기적으로 만난다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지만 최대한 많이 만나보려고 노력하고 진심으로 그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려고 하고 있다. 때로는 나 스스로도 지치고 힘들어 그만두고 싶은 생각도 들지만 내가 기다려주고 보듬어주고 용기를 건네줄 때 조금씩 마음을 열고 바뀌는 아이들을 보면 쉽사리 관둘 수가 없다.

사람이 변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사람이 변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처음부터 잘 못 끼워진 단추를 다시 풀고 다시 끼우기 위해선 푸는 과정과 새롭게 끼우는 과정을 우린 기다려야한다. 그러니 시간은 더 더디게 걸린다고 생각될지 모르겠다. 그러나 묵묵히 지켜보며 기다리면 천천히 단추를 풀고 새 단추를 끼우기 시작한다. 그러니 우리는 꾸준하게 관심을 가지고 응원하며 지켜보고 안아주어야 한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내 아이도 남의 아이도 모두 잘 성장하려면 우리가 이들이 든든하다고 느낄 수 있는 마을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최근 한 TV프로그램에서 이탈리아 피렌체의 500년가량 된 고아원이 소개된 것을 보았다. 5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곳에 입소할 당시 아이들이 가지고 있던 소지품들을 보관하고 있었다. 값비싼 묵주부터 반쪽난 단추까지... 혹시라도 부모가 다시 찾아오면 아이를 데려갈 수 있도록 한 배려이다.

그런데 그 곳에서 자란 한 여성의 인터뷰가 귀에 들어왔다. 그 여성은 고아원에서 자라다 좋은 양부모에게 입양된 경우였는데 친부모가 찾아오는 바람에 양부모와 다시 헤어져 친부모와 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여성은 친부모와 좋은 사이로 살 수 없었다고 했다. 사고방식이나 삶의 방식에 차이가 나다보니 적응하기 쉽지 않았고, 몸도 아프게 되었지만, 친부모는 아이를 제대로 돌봐주지 않았다.

그 여성은 인터뷰에서 “가족은 만들어가는 것이다”라고 얘기했다. 그렇다. 가족은 필요하다면 서로 함께 만들어 갈 수 있다. 직접 입양을 해서 서류상의 친 가족을 만들지 않아도 우리는 모두 가족이 될 수 있다.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주변을 돌아보면 나의 역할을 필요로 하는 곳들이 가까이에 많이 있다.

내가 지금까지 이렇게 자원봉사활동을 지켜올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내 주변에 뜻을 함께 해 준 지인들이 도움을 준 덕분이기도 하다. 어쩌면 잘 몰라서 함께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우리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둘러보자. 그리고 내가 함께 할 수 있는 곳에서 쉬운 역할부터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