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미국에 살고 있는 딸의 집을 방문했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경치 좋은 곳들을 둘러보며 머리도 식히고 즐기는 시간이었다. 그래도 그 중 가장 행복했던 것은 손주들과 함께 한 시간일 것이다. 훌쩍 커버린 손주들이 어떤 생활을 하면서 지내는지 볼 수 있어 좋았고 특히 학교생활도 둘러볼 수 있어서 참 좋았다.

미국의 학교를 들여다보니 우리나라에서는 느낄 수 없는 인상적인 것들이 있다. 바로 학교 내 기부문화이다. 우선 학교에 자발적으로 기부를 할 수 있다. 내 자녀, 내 손주가 다니는 학교에 도움을 주고 싶다면 언제든지 기부할 수 있다. 나의 선의를 ‘선한 뜻’ 그대로 받아들인다. 학교의 발전을 위해서 학부모들이 물심양면으로 참여한다. 물론 이것은 말 그대로 자발적인 의지이기 때문에 강요하지 않는다.

또한 누가 얼마만큼 기부를 했는지 본인 이외 아무도 알지 못한다. 얼마를 기부했다고 감사장으로 주는 것도 아니고 그것에 대해 알리지도 않는다. 따라서 기부를 한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을 차별하지 않는다. 기부도 그리 큰 금액이 아니어도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범위로 그리 부담가지 않는 정도이다. 그저 우리 아이들이 생활하는 곳이 좀 더 좋은 시설과 프로그램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가정과 지역에서 함께 고민하고 지원하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의무교육인 초등, 중등 교육을 위한 모든 지원은 국가에서 다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학교 재정을 위한 국가의 예산은 현실적으로 그리 넉넉하지가 않다.

언젠가 우리 지역의 초등학교를 방문해보니 화장실, 운동장 등 학교 시설이 수 십 년 전의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음에 깜짝 놀랐다. 오죽하면 초등학교에 입학한 신입생들이 학교 화장실이 무서워서 가지 않는다는 말이 나올까? 그래서 시설 보강을 해야 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럴 수 있을만한 재정지원이 이루어지지 못한다고 했다.

이 모두를 공적인 부분에서 해결해줄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렇지 못한 부분들이 있고 또 모든 학교들이 똑같은 상황이 아니다보니 일률적으로 똑같이 시설보강을 위한 예산을 사용한다면 그 또한 비효율적일 것이다.

이러한 어려움이 있을 경우엔 기부 등의 방법으로 해결하면 좋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자식 잘 봐 주세요’하는 의미가 아니라 학교의 발전을 위한 선의의 기부가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되면 좋겠다.

미국 학교가 한국 학교와 다른 모습은 부모들의 기부만이 아니다. 학교 인근 햄버거 가게에서 한 달에 한 번 ‘햄버거 먹는 날’을 정해 그 날의 순수입을 학교의 발전을 위해 기부하는 등 지역의 식당이나 상점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자연스럽게 기부를 접하고 배우게 되는 좋은 모습이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기부에 대한 인식과 참여가 과거에 비해 많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최근 기부에 대한 거부감을 들게 하는 몇 가지 사건들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그러한 몇 가지 사건들로 기부의 가치를 비하하지 않았으면 한다. 기부하는 그 자체가 즐겁고 그에 대한 대가를 바라지 않으며 다만 조금씩 변화하고 발전하는 이웃과 사회를 보면서 뿌듯함을 느끼고 기쁨을 만끽할 수 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어느덧 벌써 5월, 새삼 가족의 사랑을 더 생각하게 되는 이 때 나의 가족과 더불어 우리 주변의 이웃도 둘러보는 여유와 배려를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